귀인 장씨(인조)
최근 수정 시각: (5년 전)
분류
조선 인조의 후궁 귀인 장씨 | 貴人 張氏 | |
출생 | |
사망 | |
해풍(海豊) | |
부모 | 부친 장류 모친 한산 이씨 |
부군 | |
자녀 | 자녀 없음 |
묘소 | |
1. 개요 [편집]
2. 생애 [편집]
1635년(인조 13) 숙의를 간택할 때, 후궁으로 선발되어 이현궁에서 한 달동안 교육을 받고 입궁하였다. 특히 이현궁은 인조의 모후인 인헌왕후가 머무르던 궁궐로, 후궁으로서는 상당한 수혜를 입은 것이다. 이 당시, 장씨의 간택과 가례 절차는 하나의 전례가 되어 훗날 숙종이 후궁을 간택하는 절차에도 참고하게 된다.
1638년(인조 16) 인조가 장렬왕후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을 때, 관례상 장씨는 정2품 소의로 책봉되고, 1640년(인조 18)에는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되었다.[2] 그러나 당시 가장 총애 받는 후궁은 귀인 조씨였으므로 장씨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였다.
1638년(인조 16) 인조가 장렬왕후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을 때, 관례상 장씨는 정2품 소의로 책봉되고, 1640년(인조 18)에는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되었다.[2] 그러나 당시 가장 총애 받는 후궁은 귀인 조씨였으므로 장씨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였다.
3. 여담 [편집]
- 《연려실기술》 인조조고사본말에 따르면, 하루는 인조가 꿈에서 한 여자를 보았는데 스스로 장류의 딸이라 말하고, '태평(太平)'이란 글자를 써서 올렸다. 잠에서 깬 인조가 수소문하여 찾아보니, 진사 장류라는 사람에게 과연 딸이 있었다. 이에 후궁으로 뽑아 들이게 한 다음 시험 삼아 글씨를 써보게 하였더니, '천하태평춘(天下太平春)'이라는 다섯 자를 써 올렸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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