귀인 장씨(인조)

최근 수정 시각: (5년 전)
조선 인조의 후궁
귀인 장씨 | 貴人 張氏
출생
1619년(광해 14년) 3월 16일
사망
1671년(현종 12년) 1월 24일
(향년 53세)
해풍(海豊)
부모
부친 장류
모친 한산 이씨
부군
자녀
자녀 없음
묘소


목차
1. 개요2. 생애3. 여담

1. 개요 [편집]

조선 인조의 간택 후궁. 아버지는 선공감[1] 부봉사를 지낸 장류이며, 어머니는 한산 이씨다.

2. 생애 [편집]

1635년(인조 13) 숙의를 간택할 때, 후궁으로 선발되어 이현궁에서 한 달동안 교육을 받고 입궁하였다. 특히 이현궁은 인조의 모후인 인헌왕후가 머무르던 궁궐로, 후궁으로서는 상당한 수혜를 입은 것이다. 이 당시, 장씨의 간택과 가례 절차는 하나의 전례가 되어 훗날 숙종이 후궁을 간택하는 절차에도 참고하게 된다.

1638년(인조 16) 인조가 장렬왕후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을 때, 관례상 장씨는 정2품 소의로 책봉되고, 1640년(인조 18)에는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되었다.[2] 그러나 당시 가장 총애 받는 후궁은 귀인 조씨였으므로 장씨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였다.

3. 여담 [편집]

  • 연려실기술》 인조조고사본말에 따르면, 하루는 인조가 꿈에서 한 여자를 보았는데 스스로 장류의 딸이라 말하고, '태평(太平)'이란 글자를 써서 올렸다. 잠에서 깬 인조가 수소문하여 찾아보니, 진사 장류라는 사람에게 과연 딸이 있었다. 이에 후궁으로 뽑아 들이게 한 다음 시험 삼아 글씨를 써보게 하였더니, '천하태평춘(天下太平春)'이라는 다섯 자를 써 올렸다고 한다.
[1] 건축물의 조성 및 왕실 및 중앙에 필요한 땔감 연료인 시탄(柴炭)을 조달하는 등의 일을 하는 부서. [2] 보통 새로운 왕이 즉위하거나 왕비나 세자가 책봉되는 등 나라에 경사가 있으면 품계를 높여주는 일이 있었다. 예를 들면, 명빈 박씨영빈 김씨인원왕후가 새 왕비로 들어온 기념으로 정1품 빈이 된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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